전라남도 장성 출신. 광복 직후 정치에 입문하였는데,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중앙위원직을 시작으로 1949년에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전라남도 조직부장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1952년 목포일보 광주분실장으로서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1953년 민주당에 입당하여 상무위원직을 맡으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일생을 반독재투쟁으로 점철되었다. 1959년 신민당 상무위원, 1960년 4·19혁명동지회 지도위원, 1971년 민주통일당 대변인, 1974년 민주통일당 정책위원회 의장, 1979년 민주통일당 부총재, 1985년 신한민주당 창당발기인 등의 약력이 말하여주듯이 야당정치인으로 일관되었다.
제5공화국이 출범되면서 「정치피규제법」에 묶여 제도권내 정치활동이 잠시 중단되었으나 1984년 피규제에서 해금되면서 광주을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 그 동안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1위로 당선하여 다시 의정활동을 재개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어 자신의 정치역량을 발휘하고자 하였으나 지병인 심장병 치료차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숨을 거둘 때까지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절규하였다는 일화도 남기었는데, 그의 시신은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