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김지종(金知宗). 김황(金晃), 김광(金光)이란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1921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하여 1923년 졸업하였다. 화요회원, 한양청년연맹상무집행위원, 혁청당(革淸黨) 당원, 신흥청년동맹 상무집행위원장, 조선기근구제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가 결성되자 여기에 참가하여 중앙검사위원이 되었다. 1925년 12월 ‘제1차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에서 벗어난 이후 권오설(權五卨)과 함께 조직을 재건하는 활동을 펼쳤다.
1926년 3월 일본을 거쳐 상해로 망명한 이후, 다시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을 설립하라는 임무를 받고 길림성 주하현(珠河縣) 일면파(一面坡)로 갔다. 이곳에서 1926년 5월 조선공산당 및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이 때 고려공산청년회 만주총국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 해 가을경 박윤서(朴允瑞)가 이끄는 만주고려공산청년회와의 합동문제를 해결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927년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검거사건’ 때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8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1933년 출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