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 관한 기록은 『일본서기』에만 실려 있다. 668년(문무왕 8)에 급찬으로서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일본은 그를 통해 김유신(金庾信)에게 배 한 척, 문무왕에게 비단 50필, 면 500근, 위(韋) 100매를 보내고, 사신으로 간 김동엄 등에게도 차등있게 물건을 주었다. 그리고 일본의 국사와 함께 귀국하였다고 한다.
이 해는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을 이룩한 해로 오랫동안 서로 적대관계에 있어서 사신의 내왕이 없었는데, 이때 비로소 김동엄을 보내어 조물(調物)을 보냈다고 한다.
그 동안 일본에서는 대마도(對馬島)·북구주(北九州) 등에 산성과 '수성(水城)'을 쌓고 신라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김동엄 등을 소홀히 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