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평안남도 덕천 출신. 김리근(金利根)의 아들이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기독교에 입교하여 장로가 되었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국내에 특파되었다. 1921년 오운흥(吳雲興)·서봉근(徐奉根)과 국내에 잠입하여 덕천 일대에서 군자금모금과 동지규합에 노력하였다. 당시 덕천, 영원, 맹산 지역에서 활약하던 대한독립청년단본부원인 나병삼(羅炳三) 등에게 권총을 전달하였다.
왕익붕(王益鵬)을 추가한 일행은 덕천군 태극면 노상에서 독립군을 체포하기 위하여 출동한 태극주재소 일본경찰 4명에게 총을 쏘아 그 가운데 1명을 사살하였으나, 왕익붕은 붙잡히고 말았다.
다시 평안북도에서 활동을 계속하다가 1922년 봄에 붙잡혀 1923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불복하여 공소하였다. 그러나 평양복심법원에서도 또한 사형언도를 받아 7월 평양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