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1운동의 일환으로 그해 4월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시위 도중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언도받았다.
1920년 서울의 황상규(黃尙奎: 일명 白民)의 지령을 받고, 만주에 설치할 무관학교의 설립기금 조달을 목적으로 신의주에서 파견된 김노봉(金魯鳳)을 만났다.
두 사람은 밀양경찰서를 폭파할 계획을 세우고,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우선 창령의 거부 하경석(河慶錫)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 3,000원을 강요한 끝에 150원을 빼앗은 뒤 서울의 황상규에게 전달하려던 차에 붙잡혀,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언도받고 부산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이 서훈되었고,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