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영변 출신. 일찍이 만주로 망명하여 1924년 대한통의부 독립결사대에 가입하였다. 1924년 7월부터 동지 정문빈(鄭文彬)·김준승(金俊承) 등과 국내에 잠입하여 안주·박천·영변·개천 등지를 내왕하면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6년 4월 26일에 개천군 북면 용담리 김덕린(金德麟)의 집에 머물고 있던 중 이장의 밀고로 출동한 일본경찰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가 총탄을 맞고 붙잡혔다. 1926년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8년만에 출옥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