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팔로군 포병단 단장, 조선의용군 총사령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국공분열 후에는 루이진[瑞金]의 중국 노농홍군에 입대, 1934년 10월부터 전개된 2만 5,000리 대장정에 참여하였다. 1937년 8월 노농홍군이 중국 국민혁명군 제팔로군으로 이름이 바뀔 때 총사령부 작전과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1월 제팔로군 최초로 창건된 포병단(병력 1,000여 명)의 단장이 되었다. 제팔로군이 화북 일본군에 대공세를 퍼부었던 1940년 하반기 백단대전(百團大戰)에 포병을 이끌고 참전하였다.
그 뒤 주로 조선인 민족간부 양성에 주력하여 화북조선청년연합회(1941년 1월 太行山 속에서 결성) 조직을 주도, 회장에 취임했으며, 1942년 7월에 조직된 조선의용군 총사령이 되었다. 그 해 말 타이항산에서 화북조선혁명군사학교를 창설, 조선 청년들을 교육하였다.
광복 후 김두봉(金枓奉) 등과 함께 개인 자격으로 북한으로 입국,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중앙위원, 같은 해 7월 북조선노동당 제2비서와 보안간부훈련대대부(사령관 崔庸健)의 포병담당 부사령관, 1948년 3월 조선노동당 제2차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각각 선출되었다. 6 · 25 초기에는 제2군단장으로 출전했고, 인민군 후퇴시에는 수도(평양)방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50년 12월 4일 만포 별오리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3차정기대회에서 불법살인 · 명령불복종죄로 규탄받고 강등, 인민군 수인(囚人)부대 연대장이 되어 평양 모란봉극장을 지하에 건설하기 위한 작업에 종사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요구로 중국으로 인도되었으나 1951년 7월경 병으로 죽었다.
참고문헌
- 『조선의용군사령원 무정장군』(결전,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편집위원회, 민족출판사, 북경, 1991)
- 『한국공산주의운동사』5(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6)
- 『북한전서』(극동문제연구소, 1974)
- 『무정일대기』(신천지, 1946.3)
- 「民族運動史上の人物-武亭-」(朝鮮民族運動史硏究會, 『朝鮮民族運動史硏究』 2, 198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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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1921년에 리다자오(李大釗), 천두슈(陳獨秀) 등을 중심으로 상하이에서 결성된 중국의 정당. 마오쩌둥(毛澤東)의 지도 아래 국민당과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1949년에 중화 인민 공화국을 세우고 주도적 정당이 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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