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영휘전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김창집 등의 주장으로 연잉군이 왕세제로 책봉되어 정무를 대리하므로, 책봉에 반대하던 소론 승지 김일경(金一鏡) · 목호룡(睦虎龍) 등은 노론 4대신을 무고하여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이때 김복택도 이에 연루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다. 1724년 유배에서 풀려난 뒤 영휘전참봉(永徽殿參奉)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신임사화 때 노론파의 대다수가 죽었는데도 유배만 당하였던 사실과 신임사화를 비난한 것이 영조의 비위에 거슬려 1740년 투옥되어 옥사하였다. 그 뒤 영조는 자신의 지나친 조처를 후회하였다. 1779년(정조 3) 신임사화 때 죽은 노론파 대신을 증시(贈諡)하면서 김복택도 관품이 추능되고 자손은 등용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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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거제 유배 : 『경종수정실록』 4권, 1723년(경종 3) 1월 10일. "김조택·김복택 등을 남해현·거제부 등지에 유배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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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옥사 : 『영조실록』 52권, 1740년(영조 16) 11월 5일. "김복택이 옥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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