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성 출신. 1906년 국권회복을 위하여 기삼연(奇參衍) 주도 아래 일심계(一心契) 조직에 참여하여 왜적토멸전략을 협의하였다.
1907년 영광군의 수록산에서 기삼연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총수로 의거할 때 서기 겸 참모로 임명되었다. 담양의 추월산성에 들어가 머물던 기삼연의 진영이 그해 12월 27일 밤에 일본군 대부대의 습격을 받아 일본군 100여 명을 죽이고 우리측도 30여 명의 전사자를 내었다.
이때, 부상당한 기삼연이 재기를 꾀하고 있을 동안 함평·담양·광주·나주·무장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그 대다수를 격파하였으나, 1908년 1월 19일 장성군 황룡면 탑정리전투에서 전사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