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大震)은 발해의 이명(異名)으로 겨레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1914년 8월 이래 만주 장백현(長白縣) 16도구(十六道溝)에서 교주 김중건(金中建)이 원종교(元宗敎)를 일으켜 배일세력(排日勢力)을 상당히 규합하였다.
김중건은 1920년 11월 청년 20명과 안도현 흥도자(安圖縣興道子)로 옮겨 대진단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단원 및 군자금 모집에 주력하였으며, 러시아식 보병총과 권총 등을 가지고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 총단장 김중건 밑에 약 200명의 단원이 있었다고 한다.
각지에 지단을 설치하였는데, 그 가운데 장백현지단만이 분명하다. 장백현지단장에는 강계동(姜啓東), 총무 조경욱(趙京郁), 서기 김준(金俊), 통신장 조내원(趙來元), 무기감수 황덕윤(黃德允) 등이었다. 지단원도 약 200명이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적었다.
이 단체는 장백현에 근거를 둔 군비단(軍備團)·흥업단(興業團)·태극단(太極團)·광복단(光復團) 등과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21년 1월 본현 17도구 대리치(大利峙)의 장백지단이 주동이 되어 군비단·태극단·흥업단 결사대와 간부회의를 열어 무장대연합회를 구성하여 공동투쟁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10월 이들 단체가 연합하여 대한국민단을 조직하였다. →대한국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