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자유만세」·「오발탄」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조명기사.
생애 및 활동사항
1942년 조선영화주식회사 조명부장과 기술부 책임자가 되었고, 같은해 조선인의 일본군 입대를 홍보하는 「나는 간다」(감독 박기채)에서 조명을 맡았다. 이외에도 1943년 지원병 모집 홍보를 위한 「조선해협」(감독 박기채) 및 이마이 타다시[今井正] 감독의 「망루의 결사대[望樓の決死隊]」, 1944년 시골 국민학교 교사가 '내선일체'를 잘 선전하여 제자들을 지원병으로 참전케하는 최인규(崔寅奎) 감독의 「태양의 아이들[太陽の子供達]」 등과 같은 다수의 친일 군국영화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 1946년 「자유만세」(감독 최인규), 1948년 윤봉춘(尹逢春) 감독의 「유관순」, 1956년 이병일(李炳逸) 감독의 「시집 가는 날」 등의 조명을 담당했다. 특히 한국 사실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히는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오발탄」에서는 조명과 함께 제작도 맡았다. 고해진(高海振) 등 다수의 뛰어난 조명기사들을 양성했고,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영화기술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77년 9월 5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식민지 시대 대중예술인 사전』(강옥희 외, 소도, 2006)
- 『평전(評傳) 한국영화인열전』(이영일, 영화진흥공사, 1983)
- 『경향신문』(1961.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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