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공부상서, 상서우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병부상서|공부상서|상서우복야
목차
정의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공부상서, 상서우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061년(문종 15)에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가 되었다가 곧 병부상서(兵部尙書)로 승진하였다.

1067년 병부상서로 있을 때 흥왕사(興王寺)가 12년 동안의 역사 끝에 완공되어 왕이 낙성재(落成齋)를 베풀고자 하였는데, 각 지방의 승려들이 수없이 몰려들었으므로 김양은 왕명을 받들어 우가승록(右街僧錄) 도원(道元) 등과 함께 계행(戒行)이 있는 자 1천명만을 참석하게 하고, 이들을 그 절에 상주시켰다. 그 뒤 1072년에 공부상서(工部尙書)가 되었고, 1075년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제수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금남집(錦南集)』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
집필자
김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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