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 정치·법제
  • 인물
  • 일제강점기
  • 현대
일제강점기 때, 전라남도 진도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5대 민의원, 재무부장관, 국토통일원장관, 주일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외교관·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 이칭金山永善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87년 2월 17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918년 4월 25일
  • 출생지충청남도 보령
집필 및 수정
  • 집필 2016년
  • 심재욱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전라남도 진도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2대, 5대 민의원, 재무부장관, 국토통일원장관, 주일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외교관·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출생했다. 1937년 이리(裡理)농림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했다. 같은해 7월 일본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 충청북도 도속·군속·도경부를 겸했으며, 승진해서 1945년 2월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전라남도 진도군수로 재직했다.

해방 이후 1948년 대한상공회의소 전문위원을 거쳐 1950년 충청남도 보령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후 1954년 제3대, 1960년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58년에는 경향신문 논설위원으로 2년간 경제논설을 집필했다. 흥한(興韓)경제연구소를 설립하여 경제부흥책 등을 연구했으며, 1960년 8월부터 제2공화국 장면(張勉) 내각의 재무부 장관으로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실각하기까지 경제발전5개년계획을 수립·추진했다. 다시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등용되어 1970년부터 1973년까지 국토통일원 장관을 거쳐, 1974년부터 5년간 주일대사를 역임했다. 1979년 대한화재보험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980년 정신문화연구원 이사장, 1983년 국토통일원 고문을 역임했다. 1987년 2월 17일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서독(西獨) 성수공로훈장(星綬功勞勳章)을 받았다.

참고문헌

  • -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 - 『동아일보』(1987.2.18)

  • - 『충청인사집(忠淸人士集)』(충천인사편찬위원회, 1957)

  • - 『조선총독부관보』

  • -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직원록(朝鮮總督府官報及所屬官署職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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