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현(金鶴鉉)의 아들이다.
어사(御史) 이건창(李建昌)이 김영진의 부친을 잡아들여 ‘명색이 사족으로서 교궁(校宮)을 출입하며 협잡을 했다’는 죄목으로 형장(刑杖)을 가해 죽게되자, 그 스스로 잠두(蠶頭)에서 거화(擧火)하여 형조(刑曹)에 잡혀가 부친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고 호소하였다.
이에 이건창은 ‘사사로운 원한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는 죄로 마침내 벽동군(碧潼郡)으로 귀양을 갔다. 1901년(광무5) 10월 지도군(智島郡) 고군산(古羣山)에 3년 유배형을 받아 갔으나 다음달에 곧 방면되었다.
1902년 경위원(警衛院) 총무국장으로서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임명되었고, 1904년 한성부 판윤, 군부 포공국장(砲工局長), 내장원(內藏院) 감독을 지냈고, 육군참령으로서 육군참장(陸軍參將)에 임명되었다. 1905년 군부 교육국장, 1907년 봉상사제조(奉常司提調)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