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1897년 경인철도인수조합(京仁鐵道引受組合)을 토대로 1899년 설립되어, 1899년 9월 경인선을 완공하였다. 경인선은 수도 서울과 최대 항구인 인천항을 연결하는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이다.
일본 정부는 1896년 미국인 모어스(J. R. Morse, 毛於時)가 확보한 경인철도부설권을 매수하기 위해 일본의 대표적인 정상자본가들인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彌之助〕, 시부사와 에이이치〔涉澤榮一〕 등을 통해 1897년 5월 4일 경인철도인수조합을 결성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의 중의원과 귀족원 등은 이미 경인선의 부설에 필요한 자금 180만 엔을 이 조합에 대출해 주도록 조치하였다.
이어 일본은 자금난 등에 직면해 있던 모어스에게 경인철도를 미국과 일본의 공동사업으로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모어스는 철도 건설 후의 모든 권리를 매각할 의향을 표시하게 됨에 따라 1897년 5월 8일 시부사와 등과 경인철도양수계약을 체결하였다.
1899년 경인철도인수조합은 일본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경인철도합자회사로 개편되었고, 경인선 전 구간을 4공구로 나누어 공사를 진행하였다. 이를 시공한 것은 일본의 토목건축업자 가지마구미〔鹿島組〕였고, 기간은 인천-노량진 구간에 6개월, 한강 교량공사에 1년 3개월, 한강-남대문 구간에 1개월 정도 걸렸다. 1899년 9월 18일 전 구간이 개통되어 노량진에서 개통식을 하였다. 개통 당시는 증기기관차 4대, 객차 6량, 화차 28량 등을 보유하였다.
철도의 건설과정에는 경인철도의 용지로 면입된 부지가 적지 않았고, 거기에 민간 소유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보상 문제로 주민과의 마찰이 지속되었다. 경인철도에 편입된 부지의 대금은 46,354원 26전, 주택 가격은 43,573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용지는 「특허조관」에서 한국정부가 제공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토지 및 가옥의 보상은 1907년까지도 해결이 되지 못해 대한제국 정부가 어려움을 겪었다.
경인철도합자회사는 1903년 경부철도주식회사로 흡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