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출신. 1907년 군대해산 후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확산되자,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진안 석전리에서 부대를 정비, 강화할 때 의병진에 가담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었다.
주로 무기수집 등의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선봉장의 구실도 수행하였으며, 진안군을 습격하여 일본군 수비대를 격퇴시키는 데 참여하였다. 용담전투에서 패배하여 군사가 흩어지자 이들을 수습, 11월에는 장수에서 부대를 다시 편성할 때 중군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이석용을 도와 임실 · 장수 · 남원 · 함평 등지를 이동하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중추적인 구실을 하던 부장들이 점차 전사하고 무기와 인원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 1908년 9월 의병진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남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활동을 계속하여 1912년 10월 박보국(朴甫局) · 김필수(金必洙) 등과 함께 총기 6정, 조선도(朝鮮刀) 한자루를 휴대하고 장수군 내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고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 면서기 · 전 면장으로부터 세금 등을 탈취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였으다.
같은 해 12월에는 임실에서 공전영수원의 집에 돌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86년에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