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서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9년(고종 16)
사망 연도
1929년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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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이석용 의진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하였으며, 국권 피탈 이후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전북 임실 출신. 1907년 군대해산 후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확산되자, 의병장 이석용(李錫庸)이 진안 석전리에서 부대를 정비, 강화할 때 의병진에 가담하여 중군장(中軍將)이 되었다.

주로 무기수집 등의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선봉장의 구실도 수행하였으며, 진안군을 습격하여 일본군 수비대를 격퇴시키는 데 참여하였다. 용담전투에서 패배하여 군사가 흩어지자 이들을 수습, 11월에는 장수에서 부대를 다시 편성할 때 중군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이석용을 도와 임실 · 장수 · 남원 · 함평 등지를 이동하며 일본군과 맞서 싸웠으나, 중추적인 구실을 하던 부장들이 점차 전사하고 무기와 인원이 부족하게 되어, 결국 1908년 9월 의병진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남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활동을 계속하여 1912년 10월 박보국(朴甫局) · 김필수(金必洙) 등과 함께 총기 6정, 조선도(朝鮮刀) 한자루를 휴대하고 장수군 내진전면사무소를 습격하고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 면서기 · 전 면장으로부터 세금 등을 탈취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였으다.

같은 해 12월에는 임실에서 공전영수원의 집에 돌입하여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에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정재창의록(靜齋倡義錄)』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독립운동사자료집』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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