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행정관료로 출발하여 해방 이후 남조선 과도정부 및 대한민국 정부의 내무부 차관 등의 행정관료를 거쳐, 자유당 소속으로 제4대 민의원,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제8·9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활동을 전개했으며, 대한민국헌정회의 제9대 회장을 거쳤다. 이외에도 동양합섬주식회사 대표이사, 대한유도회 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1909년 충청북도 괴산에서 출생했다. 괴산보통학교를 거쳐 1932년 경성사범학교 연습과를 졸업한 이후, 전라남도 보성군 낙안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1년 독학으로 일본 고등문과시험 행정과에 합격, 함경북도 내무부 지방과 속(屬)을 시작으로, 1943년 함경북도 농상부 속(상무과장)으로 근무하면서 함경북도 경부(警部)를 겸직했다. 1944년 4월 함경북도 온성군수에 임명되어 해방 때까지 근무했다.
해방 이후 1947년 남조선과도정부(南朝鮮過渡政府) 사계국(司計局) 지방장관을 거쳐, 정부 수립 이후인 1948년 11월 내무부 지방국 재정과장과 행정과장, 1950년 11월 서울특별시 내무국장으로 근무했다. 1953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내무부 지방국장이 되었고, 1954년 농림부 차관, 1955년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다. 1957년 자유당(自由黨) 중앙위원을 거쳐, 이듬해 제4대 민의원 선거 때 충청북도 괴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고, 국회 내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9년 9월 자유당 중앙당부 정책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9월 민주공화당(民主共和黨)에 입당해 서울 제12지구당 위원장, 민주공화당 중앙위원을 역임했다. 같은해 동양합섬주식회사(현 태광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가 되었고, 1965년 신흥(新興)개발주식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다. 1966년 무임소 장관에 임명되어 1970년까지 재직했으며, 장관 퇴임 이후 약 1년간 우석(宇石)학원의 관선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충청북도 괴산에서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 당기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1973년의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진천·괴산·음성 지구에서 출마해 당선되었고,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1977년 대한유도회(大韓儒道會) 회장, 1979년 대한잠사회(大韓蠶絲會) 상근회장, 1989년 헌정회(憲政會) 지도위원 및 제9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7년 12월 22일 사망했다.
황조소성훈장(黃條素星勳章), 청조근정훈장(靑條勤政勳章)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