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대아찬에 이르렀다. 660년(태종무열왕 7)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귀국하는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을 따라 김인문(金仁問)과 나마(奈麻) 중지(中知)와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숙위하였다.
사찬이었던 그는 숙위 김인문을 보조하던 수행원으로서, 661년(문무왕 1)에 김인문과 함께 귀국하여 당나라가 소정방으로 하여금 35도(道)의 수·육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함을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문무왕이 군사를 내어 고구려를 협공하였다.
그 뒤 670년에 백제의 유민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그는 대아찬으로서 강화를 청하는 사신으로 웅진도독부에 파견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신라는 군사를 일으켜 백제 잔민을 토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