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남북국시대 경주 무장사 아미타여래조상사적비의 비문을 쓴 서예가.
생애 및 활동사항
당시 사행(使行) 목적은 사은에 있었다. 일찍이 800년에 당나라에서 소성왕을 책봉한 조책(詔冊)이 그 해 왕이 죽음으로써 전하지 못하고, 당나라 중서성에 보관되었던 것을 808년(애장왕 9)에 사신으로 당나라에 간 김역기(金力奇) 편에 돌려보내 주고, 아울러 왕의 숙부 언승(彦昇)과 동생 중공(仲恭)에게 문극(門戟)을 내려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간 것이었다.
한편,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의하면 그에 앞서 803년에는 대나마(大奈麻)로서 왕명을 받들어 경주 무장사(鍪藏寺)의 아미타여래조상사적비(阿彌陀如來造像事蹟碑)의 비문을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1·2면 글이 상하에 늑자(泐字)가 많아 뜻이 통하지 않으나, 그 문장과 지식은 대단함을 보여 준다. 일부 학자는 그가 쓴 것이 아니라고 하나 “□수나마신김육진봉교(□守奈麻臣金陸珍奉敎)” 운운한 것으로 보아 그가 쓴 것이라 추측된다.
더구나 당시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비문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개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나 숙위로 가 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김육진도 그러한 사람이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구당서(舊唐書)』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상(조선총독부 편, 아세아문화사, 1976)
- 「신라하대 빈공급제자의 출현과 나당문인의 교환」(이기동, 『전해종박사화갑기념논총』,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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