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양정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양정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부터(1928) 육상선수로 활약했으며, 5,000m와 10,000m 등 장거리가 주종목이었다.
1930년 8월 3일∼4일에 걸쳐 거행된 조선 중등학교육상경기선수권대회 5,000m 종목에서 우승하고 같은 해 9월 24일 연희전문학교 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조선중등학교 육상경기선수권대회에서 1,500m와 8마일 단축마라톤경기에서 우승함으로써 육상선수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다.
1932년에 시행된 제10회 로스앤젤레스올림픽 파견마라톤 1·2차선발전에 참가하여 권태하(權泰夏)와 함께 대표선수로 뽑혔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대회에 참가하였고, 2시간 37분 28초의 기록으로 6위에 입상하였다.
8·15광복 후 권태하와 함께 조선육상경기연맹, 한국마라톤보급회 등을 조직하여 국내육상의 보급, 발전에 힘썼으며, 서윤복(徐潤福)·함기용(咸基鎔)·송길윤(宋吉允)·최윤칠(崔崙七)·김연범(金連範) 등 한국 육상의 대표급 선수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 대한체육동지회 간사 및 상무이사로 활약하였다. 1952년 제15회 헬싱키올림픽대회에는 육상 감독으로 참가했으며, 대한육상경기연맹 이사장, 체육신문사 사장, 대한체육회 상무이사, 국도신문사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