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높이에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과정에서의 달리기, 발구름, 공중에서의 다이빙 기술과 우아함, 입수 자세를 채점하여 득점으로 순위를 정하는 경기로 남·녀 스프링보드다이빙(Springboard Diving)과 플랫폼다이빙(Platform Diving) 경기가 있다.
스프링보드다이빙(Springboard Diving)은 길이 4.8m, 너비 0.5m이상의 스프링보드의 반동을 이용, 발을 굴러 다이빙해 물에 뛰어드는 경기로, 스프링보드의 높이에 따라 1m와 3m, 두 종목이 있으나 올림픽에서는 3m만 실시한다.
스프링보드다이빙 자세에는 앞으로 뛰기(Forward), 뒤로 서서 앞으로 뛰기(Inward), 뒤로 뛰기(Backward), 앞으로 서서 뒤로 뛰기(Reverse), 그리고 비틀기(Twisting)의 다섯 가지 자세가 있다.
플랫폼(Platform)다이빙은 일명 하이다이빙이라고도 불리며, 너비 2m, 길이 6m의 플랫폼에서 스프링보드의 5가지 자세와 물구나무서서 뛰어들기(Armstands)가 추가되어 6가지 자세가 있다. 플랫폼의 높이는 1m·3m·5m·7.5m·10m가 있으며, 올림픽에서는 10m만 실시한다.
스프링보드다이빙 경기에서 남자는 11회, 여자는 10회의 다이빙을 하며, 플랫폼다이빙 경기에서 남자는 10회, 여자는 8회의 다이빙을 실시하는데, 스프링보드다이빙은 규정종목 5개(난이율 9.5이하)와 자유종목 5∼6개로 구성되며, 플랫폼다이빙은 규정종목 4개(난이율 7.6이하)와 자유종목 4∼6개로 구성된다.
다이빙의 종목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군(群)으로 분류한다. ① 제1군 앞으로 뛰기(forward dives):몸을 물쪽으로 향하고 발을 굴러 앞쪽으로 뛰어드는 다이빙. ② 제2군 뒤로 뛰기(backward dives):탑 또는 뜀판의 끝에 뒤로 돌아서서 발을 굴려 뒤쪽으로 뛰어드는 다이빙. ③ 제3군 앞으로 서서 뒤로 뛰기(reverse dives):앞쪽으로 향하여 발을 구른 다음, 탑 또는 뜀판이 위치한 뒤쪽으로 뛰어드는 다이빙.
④ 제4군 뒤로 돌아 서서 앞으로 뛰기(inward dives):탑 또는 뜀판의 끝에 뒤로 돌아서서 발을 굴러 탑 또는 뜀판이 위치한 앞쪽으로 뛰어드는 다이빙. ⑤ 제5군 비틀어 뛰기(twist dives):공중에서 몸을 비틀면서 뛰어드는 다이빙. ⑥ 제6군 물구나무서서 뛰기(armstand dives):탑의 끝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한 다음 뛰어드는 다이빙 등이다.
다이빙의 심판과 채점은 7명의 심사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심판의 채점요소는 도움닫기, 안정성, 뛰어오르는 높이, 공간자세, 입수자세, 각도 등이며, 이를 종합적으로 관찰하여 채점하고 최고 및 최저 점수를 뺀 다른 5개의 평균점에 난이율을 곱한 것이 득점이 된다.
점수 결정은 완전 실패인 경우 0점, 불만족인 경우 0.5∼2점, 부족인 경우 2.5∼4.5점, 보통인 경우 5∼6점, 양호인 경우 6.5∼8점, 대단히 양호인 경우 8.5∼10점 등으로 구분하여 채점한다.
다이빙은 19세기 초 유럽에서 체조와 함께 고안되어, 경기화 하였으며, 1886년 제1회 세계선수권대회가 독일에서 열렸다. 그 뒤 1904년에 열린 제3회 세인트루이스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들만의 정식 경기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여성 다이빙경기가 올림픽경기에 채택된 것은 1912년 제5회 스톡홀름올림픽경기대회부터이다.
우리나라의 다이빙의 역사는 서울운동장에 다이빙대가 마련된 1934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뒤 1960년 제17회 로마올림픽경기대회에 이필중(李弼中)이 최초로 참가하였으며, 국제대회에서의 첫 입상은 1962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였다. 남자 하이다이빙에서 조창제(趙彰濟)가 3위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여자하이다이빙에서 신민자(申敏子)가 4위에 입상하였다.
그 뒤 1966년 방콕에서 개최된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송재웅(宋在雄)이 남자하이다이빙에서 2위에, 김영채(金玲采)가 여자하이다이빙에서 3위에 각각 입상하였다. 1970년 제6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송재웅이 하이다이빙 부문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그 뒤 몇 년 동안 국제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하다가 1978년 제8회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박영길이 남자하이다이빙경기에서 5위에 랭크되고, 1982년 제1회 홍콩국제초청다이빙대회에서 박종용이 하이다이빙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1986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선기가 스프링보드다이빙에서 557.73점으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1994년 뉴델리의 제8회 아시아태평양 A.G.E.그룹 수영선수권대회에서 이소원이 10m플랫폼과 1m스프링보드에서는 각각 1위로, 3m스프링보드 경기에서는 2위에 입상하였으며, 임윤지는 10m플랫폼에서는 1위, 1m와 3m스프링보드에서는 2위로 입상하였다.
1995년 중국 지난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다이빙대회에서 이소원이 플랫폼경기에서 3위에 입상하였고, 1996년 제5회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이종희가 3m스프링보드다이빙에서 3위에 입상하고, 여자종합 3위, 남자종합 3위를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