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은 대한사격협회로, 1954년 마닐라아시아경기대회를 참관한 다음 세계사격연맹규약서를 가져와 조직을 발의함으로써 1955년 2월 대한사격협회가 창설되었다. 그 뒤 대한체육회의 승인을 받았고, 1960년 세계사격연맹에 정회원 외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1965년 라이플협회와 클레이협회로 분리하고, 명칭을 대한사격연맹으로 개칭하였다.
제16회 멜버른올림픽경기대회부터 우수선수를 외국에 파견하여 우리 나라 사격의 질적 향상을 이룩하고, 1970년 이후 경기장시설과 기술면에서 발전을 거듭하여왔다. 1971년 태릉에 국제종합사격장을 건설하고,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서 종합성적 1위를 차지하였다. 1978년 아시아지역 국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유치하였다.
1979년 제1회 세계공기총선수권대회를 서울 태릉에서 24개국 168명의 선수가 참가한 가운데 개최하였고, 이 대회를 계기로 1984년의 LA올림픽에 공기총 종목이 정식 채택되게 되었다. 1983년 서독의 분데스리가 1급 코치인 테어(Teer,U.) 코치를 초빙하여 대표선수들을 훈련하였다.
1985년 ’86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경기대회의 성공적 개최와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서독 사격학교의 국제코치 과정에 스포츠과학연구원의 사격담당연구원 진성태(陣成泰), 88훈련단 코치 박종철(朴鍾哲), 한국주택은행의 감독 김일환(金日煥)을 파견하여, 교육을 이수하게 하고 해외 각종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 결과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7개를 획득하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1987년 ’88서울올림픽을 위한 프레올림픽으로서 ’87 UIT서울월드컵을 개최하여 42개국 681명이 참가하였다. 1988년은 한국사격의 영광의 해로 사격 30여 년 역사상 첫메달을 획득하였다. 199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세계사격연맹 정기총회에서 이우재(李祐在)는 UIT부회장과 김남구(金南九) 부회장은 클레이 분과위원, 박상동(朴尙東) 의무분과위원장은 의무분과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한국사격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