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나주 출신. 1270년(원종 11)에 나주사록(羅州司錄)이 되었다. 이때에 삼별초(三別抄)가 난을 일으켜 진도(珍島)에 웅거하면서 전라도의 해변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는데, 주변의 주군(州郡)이 모두 항복하였다.
당시 나주부사(羅州副使)로 있던 박부(朴琈) 등은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김응덕은 상호장(上戶長) 정지려(鄭之呂) 등과 함께 성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나주목(羅州牧) 관할 하의 주민을 금성산(錦城山)으로 불러들여 진을 치게 하였다.
가시나무로 책(柵)을 치고 사졸(士卒)을 격려하여 싸웠으므로, 삼별초 군사들이 성을 포위하고 밤낮으로 7일 동안 공격하였으나, 끝내 나주를 빼앗지 못하였다.
싸움이 끝난 뒤, 김서(金敍)·정원기(鄭元器)·정윤(鄭允) 등을 개경에 보내어 승전을 보고하자, 조정에서는 7품의 관작과 미곡 15석을 하사하였다. 이후 또 진도에서 삼별초와 싸워 배 1척을 노획하는 전공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