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비서, 한국독립당 상무위원, 광복군총사령부 주계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32년 4월 윤봉길(尹奉吉)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 폭탄의거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그 해 5월 초 상하이에서 항저우[杭州]로 이전을 하였다. 이 때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李東寧)·김구(金九) 등을 모시고 저장성[浙江省]자싱[嘉興]으로 피신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에 참가하였다.
1934년 1월 이동녕·김구·안공근(安恭根) 등과 함께 애국단(愛國團)을 조직하고 그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뤄양군관학교분교[洛陽軍官學校分校] 내의 한인군관학교와 의열단(義烈團) 계열의 군관학교에도 관여하면서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1939년 10월 대한민국임시정부 비서처(秘書處) 비서, 선전위원회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충칭방송국[重慶放送局]을 통해 국내에 있는 한국인들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5월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창립되자 감찰위원회 위원과 상무위원 겸 조직부 주임을 맡았다.
그 해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전, 정착한 뒤 중국 국민당(國民黨) 정부가 광복군(光復軍) 활동을 정식으로 동의한 뒤 광복군총사령부 주계(主計)에 선임되었다. 1943년 8월부터 광복군 조직훈련과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1945년 6월에는 정훈처(政訓處) 선전과장으로 광복군 활동에 참가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한국광복군』(이현희, 독립기념관, 1990)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976)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1974)
- 『독립운동사』4,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1974)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8, 13(국사편찬위원회, 1969·1973)
- 『고등경찰요사(高等警察要史)』(경상북도경찰부, 1934)
- 『朝鮮民族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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