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경성음악전문학교 초대원장, 조선음악협회 이사 등을 역임한 음악인.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 동아일보사 주최 '전조선 작곡 발표 대음악제' 합창곡 「곡접(哭蝶)」·「추억」, 바이올린 독주곡 「비가(悲歌)」·「푸레루디움 운트 알레그로」를 발표했다. 1941년 조선총독부가 '음악을 통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 수행'을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알선으로 설립된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 결성대회에서 이사에 선출되었다. 같은해 3월 조선음악협회 대표로 '8개 단체 간부는 말한다-새로운 '문화단체'의 활동'이라는 좌담회에 참석해, 조선음악협회의 '신체제문화운동'의 취지와 활동 내용을 설명했다. 또한 『매일신보』에 「음악보국-총후엔 건전한 음악-지나사변을 맞으면서」(1941.7.2)과 「나의 저온생활(低溫生活)」(1941.12.2) 등과 같은 글을 통해 후방에서의 지원을 주장했다. 해방 이후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제1회 협의회 협의회원, 조선음악가동맹 위원장 등을 거쳤다. 6·25 전쟁 당시 납북되어, 1951년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대사전』(송방송, 보고사, 2012)
-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 『문예총감(文藝總鑑)』(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76)
- 『동아일보(東亞日報)』
- 『매일신보(每日新報)』
- 『조선일보(朝鮮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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