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부대언(左副代言)·좌대언(左代言)·밀직부사(密直副使)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1365년(공민왕 14)에 황원군(黃原君) 최백(崔伯)과 함께 성절사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68년 김흥조(金興祖)·조사공(趙思恭)·유사의(兪思義)·김제안(金齊顔)·김구보(金龜寶)·이원림(李元林)·윤희종(尹希宗)·조린(趙璘) 등과 함께 신돈(辛旽)을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그런데 조사공이 이 사실을 자기와 평소 친히 지내고 있던 홍주목사(洪州牧使) 정운(鄭운)에게 말하자, 정운은 밀직제학(密直提學) 한천(韓蕆)과 더불어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 이춘부(李春富)에게 밀고하였으며, 이춘부가 궁궐에 들어가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왕명으로 순군옥(巡軍獄)에 갇힌 뒤 유배되었고, 신돈은 수하 사람을 보내어 목을 졸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