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영 ()

대중음악
인물
일제강점기 「처녀총각」 · 「개나리 고개」 · 「홍도야 울지 마라」 등을 만든 작곡가.
이칭
이칭
김기방(金基邦), 김해암(金海岩), 아사히나 노보루[朝比奈昇)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10월
사망 연도
1961년
출생지
황해도 옹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처녀총각」 · 「개나리 고개」 · 「홍도야 울지 마라」 등을 만든 작곡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황해도 옹진에서 출생했다. 1928년 황해도 공립사범학교를 졸업, 1930년 해주제일보통학교에 재직했다. 1930년 부터 3년간 도쿄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1933년 귀국 이후 경성방송국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고, 태평(太平)레코드사에서 이난영(李蘭影)의 데뷔곡인 「시드는 청춘」을 작곡, 발표했다. 이후 1934년 콜럼비아(Columbia)레코드사에서 「처녀총각」·「개나리 고개」·「마의 태자」, 1935년 「추억의 소야곡」「청춘타령」, 1938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울지 마라」 등 130여 곡 이상을 작곡, 발표했다. 1934년에 발표한 「서울 띄기」는 풍속괴란(風俗壞亂)'을 이유로 발매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37년 「반도의용가대(半島義勇歌隊)」, 1943년 「승전가(勝戰歌)」와 같은 친일 군국가요를 작곡했다. 1944년에는 일본식 예명인 '아사히나 노보루'라는 이름으로 조선군보도부(朝鮮軍報道部)에서 제작한 전시동원 선전영화인 「헤이타이상[兵隊さん : 병정님(군인아저씨)]」(방한준(方漢駿 감독)의 영화음악 전반을 담당했고, 주제가로 사용된 「어머니가 노래한다[母歌]」·「일본남아(日本男兒)」를 작곡했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947년 부터 소치쿠[松竹]관현악단의 지휘자로 활약했고, 1949년 「아름다움 청춘」의 음악 스태프로 참여했다. 1961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참고문헌

『한겨레음악대사전』(송방송, 보고사, 2012)
『한국가요사 1』(박찬호, 미지북스, 2009)
『친일인명사전』1(민족문제연구소, 2009)
『노래백년사』(황문평, 숭일문화사, 1981)
『조광(朝光)』(제4권 제2호, 1938.2)
『동아일보(東亞日報)』
『매일신보(每日新報)』
『조선일보(朝鮮日報)』
집필자
심재욱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