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가농(笳濃). 충청남도 연기 출신. 국악사장 종남(宗南)의 손자이며, 아악사장 영제(寗濟)는 그의 외숙이다. 1931년 14세에 아악부원양성소 4기생에 입소하였는데, 전공은 피리였다.
최순영(崔淳永)으로부터 피리를 배웠고, 김계선(金桂善)에게서 비곡(祕曲)을 배웠다. 1936년 졸업 후 아악수(雅樂手)로 아악부에 9년간 근무하였고, 1944년 12월 이화동회(梨花洞會)에 촉탁으로 근무하였다. 피리솜씨는 정악뿐만 아니라, 민속기악은 물론 가사·시조·속요에 이르기까지 뛰어났다.
특히 즉흥적인 수성가락은 신운이 넘쳤다. 또한, 그는 합주곡인 「평조회상(平調會相)」을 처음으로 피리 독주곡으로 불었다. 광복 후 국립국악원의 국악사로 재직하면서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피리를 지도하였다. 정재국(鄭在國)이 그의 뒤를 잇고 있다. 음악에 끼친 공로로 1958년 국악진흥회의 국악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