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예, 형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유성룡(柳成龍)을 사사하였으며, 이준(李埈)·정경세(鄭經世) 등과 학문적인 교유가 있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이준·정경세를 비롯하여 조찬한(趙纘韓)·강응철(康應哲) 등 당시에 뜻있는 선비들과 서로 수창(酬唱: 술과 시 등으로 세상일을 논함)하며 때를 기다리다가, 1623년 인조반정 후 경안찰방에 임명되었다. 그 이듬해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학유(學諭)가 되고, 1625년(인조 3) 전적(典籍)을 거쳐 형조좌랑이 되었다.
그 뒤 병조좌랑 겸 춘추관기사관·병조정랑 겸 춘추관기주관·사복시첨정(司僕寺僉正)·시강원문학·장령(掌令)·부호군(副護軍)·영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35년 사예(司藝)에 임명된 뒤 죽었다. 저서로는 『우연문집(愚淵文集)』 2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성호문집(星湖文集)』
- 『우연문집(愚淵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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