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신라에서 한아찬(韓阿飡) 김승원(金承元), 아찬(阿飡) 김지산(金祗山), 대사(大舍) 상설(霜雪) 등을 보내어 등극을 축하하고 아울러 일길찬(一吉飡) 김살유(金薩儒), 한내말(韓奈末) 김지산(金池山) 등을 보내어 선왕의 상을 조문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서기』에서는 천무왕(天武王) 2년의 간지를 계유(癸酉)라 하였으나, 계유년은 천무왕의 즉위년이기 때문에 그들이 일본에 파견된 해는 673년(문무왕 13)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때 신라는 백제의 옛땅을 차지하고 고구려의 유민을 받아들여 당나라군대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당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었다. 이러할 즈음에 종전까지 적대시하던 일본에 경조사를 파견하였다는 사실은 당나라를 의식한 신라 외교정책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