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0년(충숙왕 7) 대언(代言)으로 있을 때 상왕(上王)인 충선왕이 토번(吐蕃: 티베트)에 유배되자 그동안 충선왕의 측근에서 기생하면서 권세를 부리고 매관매직을 일삼아왔던 권한공(權漢功)·이광봉(李光逢) 등의 무리를 잡아 이문소(理問所)에서 치죄하게 되었는데, 찬성(贊成) 오잠(吳潛)과 같이 이 일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왕이 원나라에 불려가서 머무르게 되자 측근에 있으면서 왕을 보좌하였다. 1324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와 대사헌(大司憲)에 오른 뒤 통화군(通化君)에 봉해졌다.
심양왕(瀋陽王) 왕고(王暠)의 일이 마무리된 직후인 1327년 11월 왕이 억류되어 있을 때 시종하였던 여러 신하들 가운데 특히 공이 있는 자 79인에 대하여 포상할 때 2등공신호를 받았다. 1354년(공민왕 3) 벼슬이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