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취기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호군,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토산(兎山)
주요 관직
호군|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
정의
고려후기 호군,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토산(兎山). 충렬왕 때 찬성사를 지낸 김부윤(金富允)의 아들이다. 장인은 궁중에서 일하는 낮은 관원[內豎]이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충렬왕 때 호군(護軍)을 지냈으며, 1305년(충렬왕 31) 왕이 원나라에 입조하러 갈 때 수행하였다가, 이듬해 진양필(秦良弼)을 밀직부사로, 노영수(盧穎秀)·채종린(蔡宗璘)을 좌승지로, 박려(朴呂)를 우승지로 삼는다는 충렬왕의 인사발령장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1328년(충숙왕 15) 군부판서 응양군 상호군(軍簿判書鷹揚軍上護軍)에 제수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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