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성(延城). 1360년(공민왕 9) 홍건적이 침입하자 형부상서 김진(金縉)과 함께 상원군(祥原郡)으로부터 서경으로 나아가다가 적 300여 명을 만나 100여 명을 죽이고 격퇴한 공으로 2등공신이 되었다.
이때에 환관 수십 명을 전공명부에 올려 상을 청하다가 거짓임이 발각되어 신하들이 죄를 주자고 하였으나, 당시 환관의 세력이 컸으므로 도리어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1363년 홍건적을 피해 복주(福州: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피난했다가 돌아와서 경성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었다.
그 뒤 우왕에게 총애를 받았고, 또 명덕태후(明德太后)의 신임이 두터워 국가의 모든 기무를 관장하고 궁중에서 일을 보니 부녀자들의 청탁이 공공연하게 행하여졌으며, 매번 전주(銓注: 인사행정)할 때마다 왕의 앞에 이르러 관직을 주고 빼앗기를 마음대로 하였다.
1376년 반야(般若)의 옥사로 대사헌 안종원(安宗源)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고 회덕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4월에 유배지에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