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1년(문종 5) 2월 어사잡단(御史雜端)으로 있을 때 양계(兩界)지방에 기근이 들자 서경관내서도선무사(西京關內西道宣撫使)로 임명되어 창고의 곡식을 내어 진휼(賑恤)하였다.
9월에는 동북면병마부사(東北面兵馬副使)로 “여진족(女眞族)이 변경을 침략한다.”고 알려 적 59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게 하였다.
다음 해 관서(關西)·안북(安北) 양도에 기근이 들자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파견되어 구제하였다. 1059년 한림학사로서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주관하고 양신린(楊信麟) 등을 급제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