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의하면 752년(경덕왕 11) 윤3월 김훤은 공조사(貢調使)로서 왕자 한아찬(韓阿飡) 김태렴(金泰廉)과 송왕자사(送王子使) 김필언(金弼言) 등 700여 인이 배[船] 일곱척에 나누어 타고 가 일본 대재부(大宰府)에 정박하였다.
또 6월 신라왕자 김태렴 등은 일본조정에 선물을 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왕자를 보냈다는 기록은 물론 사신을 보낸 일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듬해인 753년 8월에 일본국사가 왔으나 오만무례하므로 접견하지 않으매 곧 돌아갔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볼 때 공적인 통교는 활발하지 않았으나, 사무역(私貿易) 관계는 상당한 규모로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