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1년(원종 12) 삼별초(三別抄)가 진도에서 패배하자 김통정(金通精)과 함께 탐라(耽羅)에 옮겨 항전하였다.
이듬해 4월 원나라의 초유문(招諭文)을 가지고 탐라로 가던 합문부사(閤門副使) 금훈(琴熏)이 보마도(甫麻島)에 표류하자 오인봉(吳仁鳳)·전우(田祐) 등과 함께 배 4척을 이끌고 가서 금훈의 배와 유문을 빼앗고 사람들을 모두 체포한 뒤 김통정에게 보고하였다.
그리고 금훈 등을 추자도(楸子島)에 가두고 지키다가 김통정의 회보를 받고 낡은 배 한 척에 늙은 수수(水手: 뱃사공) 1명을 붙여 금훈 혼자만 초유문자를 주어 돌려보내고 나머지 일행은 모두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