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4책. 목판본. 서문과 발문이 없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3에 시 127수, 교서 2편, 사제문(賜祭文) 2편, 소 4편, 계 11편, 권4·5에 정문(呈文) 8편, 서(書) 35편, 권6∼8에 잡저 2편, 서(序) 2편, 발 7편, 상량문 4편, 축문 14편, 제문 17편, 묘표 1편, 묘지명 5편, 행장 4편, 권9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체로 기상이 호방하나 감상적인 면이 있다. 그 가운데 「등소공대(登召公臺)」는 소공대에 올라서 탁 트인 경치를 바라보는 상쾌한 기분을 읊은 것이고, 「야문실솔유감(夜聞蟋蟀有感)」은 밤에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가을의 정취 속에서 인생의 무상을 한탄한 것이다. 「문노적동창야불능매(聞奴賊東搶夜不能寐)」는 청나라의 침입 소식을 듣고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느라 밤새 잠을 못 이루는 안타까운 심회를 읊은 것이다.
소 가운데 「무인응지소(戊寅應旨疏)」는 울진현령(蔚珍縣令)으로 있을 때 왕명에 따라 올린 보고서로, 흉년이 계속되어 주민의 생활이 어려우므로 세금을 경감해 줄 것과 부역을 줄이며 고을 재정에 국고보조를 해주도록 요청한 내용이다.
계 가운데 「청물견신사잉자핵계(請勿遣信使仍自劾啓)」는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강화를 위해 사신을 보내기로 결정한 조정의 공의에 반대해 강화사신을 보내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이다.
「조천시문견사건계(朝天時聞見事件啓)」는 1628년(인조 6) 동지사은사의 서장관이 되어 7월 11일 서울을 출발해 명나라의 남경까지 갔다가 이듬해 윤4월 11일 평양에 돌아올 때까지 도중에서 보고들은 일들과 중국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기록해 보고한 여행기록이다.
정문 가운데 「정등주군문변무문(呈登州軍門辨誣文)」은 등주에 주둔하고 있는 명나라 군대에 잘못 전달되어 명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에 오해가 생긴 일에 대해 사실을 밝힌 외교적인 문서이다.
그밖에 장현광(張顯光)에게 입문의 예를 마치고 가르침을 받은 내용을 기록한 「배문록(拜門錄)」과 자기의 사상과 취지를 밝힌 「나재설(懶齋說)」이 있고, 중국에 사신으로 가다가 중도에 해난을 당한 사신을 제사한 「제표사신문(祭漂使臣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