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염재(念齋). 전라남도 보성 출신. 초대 교주인 나철(羅喆)의 장남이자 임오교변(壬午敎變)으로 사망한 나정문(羅正紋)의 맏형이다.
어려서 한학을 수업하였고 16세부터 집안 일을 도우며 지내다가 1905년 부친 나철을 따라 재동으로 이전했다. 1909년 음력 1월 15일 대종교 중광때 입교하여 활동하다가 1914년 만주의 연길현 의란구(延吉縣 依蘭溝)로 이주하여 민족교육운동에 참여했다. 1920년 10월부터 2년 동안 당지 구룡학교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기밀참모로서 군자금 조달·군량미 보급·병사모집 등에 헌신하였다.
1909년 1월 대종교가 처음 조직될 때 곧 입교하였으며, 1922년 밀산현(密山縣) 당벽진(當壁鎭)으로 이주한 뒤 줄곧 대종교 포교를 위해 진력하였다. 1934년 만주국 치하에서 윤세복 이하 대종교 지도부에서 포교활동을 재개하였다. 이에 1941년에는 총본사가 있는 영안현 동경성(寧安縣 東京城)으로 이주하여 경의원참의(經議院參議) 등 총본사의 중책을 맡았다. 1942년 11월 일본경찰에 의해 ‘임오교변’ 사건으로 피체되었다.
그 뒤 영안현서를 거쳐 액하감옥(掖河監獄)에 구금된 지 9개월 만인 1943년 8월 18일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교단에서는 그의 생전의 공적을 기려 1946년 8월 상교(尙敎)에서 정교(正敎)로 추승(追陞)함과 동시에 대형(大兄)의 호가 추증되었다. 정부는 1968년 대통령표창, 1991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