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지금의 [나주시]에서 편찬하였다.
1책 49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7.4㎝, 가로 27.8㎝이다. 장정은 주1, 표지 재질은 황지(黃紙),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권수제는 ‘나주읍지(羅州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2이다.
당시 읍지상송령의 목적에 따라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 한전, 수전, 진공(進貢), 조적, 전세(田稅), 대동,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책판(冊板), 선생안(先生案) 등으로 구성하였다.
형승과 능침, 역원, 목장, 관애, 봉수, 진보 항목에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방리 항목에는 10개 면의 이름과 위치‚ 각 면의 호수, 남녀 수, 총호구 수를 기재하였다. 사찰 항목에서는 금산사를 소개하였고, 선생안 항목에는 역대 수령의 이름을 나열하였다. 전체적으로 간략한 체제이지만‚ 조적 항목은 23개 부문으로 나누어 기록하여 군병 항목과 함께 상세하다.
19세기 후반 나주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으로,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거나 변화된 사실을 반영하였다. 방리와 도서, 전부, 균세‚ 군액‚ 창고‚ 곡부‚ 관방‚ 진보‚ 봉수‚ 역원‚ 목장‚ 진공 등의 항목은 모두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상을 기록하였다.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필사본 『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 1책과 1897년(광무 1)에 간행된 목활자본 『금성읍지(錦城邑誌)』 2책, 연대 미상의 『나주군읍지(羅州郡邑誌)』 등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나주군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