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군읍지

  • 지리
  • 문헌
  • 대한제국기
1899년, 전라남도 나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이칭
  • 이칭나주읍지(羅州邑誌)
문헌/고서
  • 권수제나주읍지(羅州邑誌)
  • 권책수1책 49장
  • 소장처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판본필사본
  • 편저자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
  • 편찬 시기1899년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박미선 (전남대 HK교수,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11월 26일
나주군읍지 미디어 정보

나주군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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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나주군읍지』는 1899년 전라남도 나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1책 49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거나 변화된 사실을 반영하였다.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나주목읍지』와 1897년의 『금성읍지』, 연대 미상의 『나주군읍지』 등 나주군에 대한 읍지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지역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정의

1899년, 전라남도 나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

저자 및 편자

전라남도 나주군(羅州郡)지금의 [나주시]에서 편찬하였다.

서지사항

1책 49장의 필사본이다. 크기는 세로 37.4㎝, 가로 27.8㎝이다. 장정은 오침선장(五針線裝), 표지 재질은 황지(黃紙), 본문 재질은 저지(楮紙)이다. 권수제는 ‘나주읍지(羅州邑誌)’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1871년(고종 8)에 작성된 『호남읍지(湖南邑誌)』의 「나주목여지승람(羅州牧輿地勝覽)」을 저본(底本)으로 하여, 1899년(광무 3)에 내려진 읍지상송령(邑誌上送令)에 따라 편찬하였다. 당시 대한제국 내부는 13도 관찰부에 훈령을 내려 각 군의 읍지와 지도 2건씩을 한 달 안에 제출하게 하였다. 고종 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에 대비하고, 1896년(고종 33) 지방제도 개편 이후 지방행정의 실정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구성과 내용

당시 읍지상송령의 목적에 따라 채색 지도를 첨부하였다. 수록 항목은 방리(坊里), 도로, 건치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 산천, 성씨(姓氏), 풍속(風俗), 능침,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 관애(關阨),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 고적(古蹟), 진보(鎭堡), 인물, 한전, 수전, 진공(進貢), 조적, 전세(田稅), 대동,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책판(冊板), 선생안(先生案) 등으로 구성하였다.

형승과 능침, 역원, 목장, 관애, 봉수, 진보 항목에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방리 항목에는 10개 면의 이름과 위치‚ 각 면의 호수, 남녀 수, 총호구 수를 기재하였다. 사찰 항목에서는 금산사를 소개하였고, 선생안 항목에는 역대 수령의 이름을 나열하였다. 전체적으로 간략한 체제이지만‚ 조적 항목은 23개 부문으로 나누어 기록하여 군병 항목과 함께 상세하다.

의의 및 평가

19세기 후반 나주군의 연혁과 인문지리, 행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문헌으로, 갑오개혁 이후 폐지되거나 변화된 사실을 반영하였다. 방리와 도서, 전부, 균세‚ 군액‚ 창고‚ 곡부‚ 관방‚ 진보‚ 봉수‚ 역원‚ 목장‚ 진공 등의 항목은 모두 갑오개혁 이후의 변화상을 기록하였다. 정조~순조 연간에 편찬된 필사본 『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 1책과 1897년(광무 1)에 간행된 목활자본 『금성읍지(錦城邑誌)』 2책, 연대 미상의 『나주군읍지(羅州郡邑誌)』 등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나주군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금성읍지(錦城邑誌)』

  • - 『나주군읍지(羅州郡邑誌)』

  • - 『나주목읍지(羅州牧邑誌)』

  • - 『호남도지(湖南道誌)』

  • - 『호남읍지(湖南邑誌)』

  • - 『호남지(湖南邑誌)』

  • 단행본

  • - 이재두, 『조선후기 읍지편찬의 계보』(민속원, 2023)

  • - 『한국지리지총서: 읍지 1~20』(아세아문화사, 1982~1986)

  • 논문

  • - 이재두, 「19세기 후반 조선왕조의 읍지 편찬」(『조선시대사학보』 103, 조선시대사학회, 2022)

  • - 김태웅, 「근대개혁기 전국지리지의 기조와 특징: 규장각 소장 읍지를 중심으로」(『규장각』 4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3)

  • - 정대영, 「1899년 전국읍지상송령과 읍지편찬 연구」(『서지학보』 38, 한국서지학회, 2011)

  • - 양보경, 김경란, 「일제 식민지 강점기 읍지의 편찬과 그 특징」(『응용지리』 22, 성신여자대학교 한국지리연구소, 2001)

  • - 배성우, 「18세기 전국지리지 편찬과 지리지 인식의 변화」(『한국학보』 22-4, 일지사, 1996)

  • - 양보경, 「조선시대 읍지의 성격과 지리적 인식에 관한 연구」(서울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87)

  • 인터넷 자료

  • - [서울대학교 규장각 지리지 종합정보](https://kyujanggak.snu.ac.kr/geo)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주석

  • 주1

    : 책을 만들 때, 다섯 군데를 바늘로 꿰어 실로 묶는 전통적인 제본 방식.

  • 주2

    : 청구기호: 규 1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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