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활자본. 구활자본. 1913년 동양서원(東洋書院)에서 간행하였다. 이 작품은 양반가의 여주인공과 몰락한 양반 출신의 남주인공이 혼인하기까지의 역경을 그린 애정소설이다.
조선 세종 연간에 경상도 안동에 권극(權克)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학식과 견문이 매우 넓으나 가난한 선비로 나이 오십이 다 되어 아들 권질(權礩)을 얻었다. 마을의 장자(長者) 이 진사가 자신의 아들 석룡의 스승으로 초빙하니 권극은 가족과 함께 석룡의 스승으로 들어간다.
질이 석룡보다 재주가 훨씬 뛰어나자 석룡은 권 처사 부자를 시기한다. 그러다 석룡은 누이 채봉(彩鳳)과 질이 혼인할 것을 정하자, 불한당 황창운과 결탁하고 모욕적인 편지를 권 처사에게 보낸다. 이 때문에 권 처사 일가는 집으로 돌아간다.
권 처사와 이 진사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자, 황창운의 농간으로 안동 부사의 아들 하천년(河天年)이 채봉과 혼인하고자 한다. 채봉이 거절하자, 천년이 질 모자를 죽이려 하므로 채봉은 이 둘을 피신하게 한다. 채봉은 3년 상을 구실로 결혼을 연기하고, 3년 상을 마치자 남장을 하고 달아난다.
질은 채봉이 보낸 돈이 떨어지자 승지를 지냈던 조경의 집에 가서 종이 된다. 조경의 딸 채란(彩鸞)이 질의 학문을 알고는 서울로 가서 과거를 볼 수 있게 주선하여 준다. 채봉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조경의 집으로 와 채란의 도움으로 질의 모친을 만나게 된다.
질은 과거를 보아 한림학사가 되고, 도승지 조경이 질과 채란의 혼인을 임금께 청하여 채봉과 채란을 좌우부인으로 삼도록 허락을 받는다. 질은 안동으로 가서 노복이 되어 있는 석룡을 용서하고 하천년을 훈계한 뒤, 채란·채봉을 부인으로 삼아 행복하게 산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혼사 장애라는 전통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 세태를 반영하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가난한 처사가 양반 자제의 독선생을 맡으면서 생활을 보장받는다거나, 「춘향전」에서와 비슷한 지방관원 자제의 횡포, 양반이 노복으로까지 하락하였던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것 등은 이 작품이 조선 초기를 시대배경으로 설정하였으면서도 후대의 세태까지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질·석룡·하천년 등의 남성들보다 채란·채봉, 시비 취운 등 여성들의 능력과 지혜가 훨씬 앞서는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여성 중심의 고전소설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