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호빙심 ()

고전산문
작품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내용 요약

「옥호빙심」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의 전반부는 사강백·이옥호·해빙심의 결연담 위주로 전개되고, 후반부는 정난지변을 둘러싼 남주인공의 출사와 은거를 다룬다. 결연담은 작품 전체의 3/4에 해당하고, 정난지변과 관련된 출사와 은거는 작품 전체의 1/4에 해당한다. 작품 중간에 삽입 한시를 활용한 점이 특징적이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이본 현황

이본(異本) 3종이 있는데, 모두 한글 필사본(筆寫本)이다. 서울대학교 소장본 4권 4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낙선재본 3권 3책,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3권 3책이 있다. 이 중 낙선재본은 제2권이 빠져 있고, 중앙대 소장본은 제1권이 빠져 있어, 두 이본 모두 각각 2권 2책만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본의 4권 말에는 소설 본문 다음에 필사기 · 「한단몽기」와 함께, 역대 제왕을 송축하는 내용의 구가 붙어 있다. 필사기는 다음과 같다. 주4주39는 현행 표기법을 따른다.

“내 삼십 년 젼의 안국방 집의 이실 때 셔암이 이 책 보는 거슬 듯고 마음의 죠히 넉여 한번 벗기고져 하다가 밋처 못하고…… 이 해 여름의 안해 드러갓더니 삼자부 윤소졔 이 책을 보거늘 신긔코 반가와 즉시 삼부의게 벗기기를 부탁하고 윤칠월의 패상의가 계츄슌젼 도라오니 다 벗겨시되…… 졔목을 친히 쓰고 또 이리 뎍어 긔록하노라. 갑신초동 십팔일 셕남거사는 견평방집 듕채 상실의셔 쓰다.”

견평방(堅平坊)은 조선 후기 중부 8방의 하나로, 1914년 동명(洞名) 개편 때 주5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따라서, 갑신년은 늦어도 1884년(고종 21)이 되며, 서암이 보았다는 저본(底本)은 늦어도 1854년(철종 5) 무렵에 유포되었던 것이 된다. 이 필사기를 통해 규방(閨房) 여성뿐만 아니라 사대부도 이 소설의 독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본 「옥호빙심」의 제1권에는 “반셰풍진행객도 백년잠학작한인(半世風塵行客途 百年潛壑作閑人)”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이 표제는 본래 소설의 한 장(章) 혹은 한 회(回)의 이름이거나 중편 · 단편집의 한 편명일 가능성도 있으나 개편시(開篇詩)일 가능성이 크다. 이 시는 권1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 게 아니라, 사강백의 일생을 응축해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사강백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므로, “반셰풍진행객도 백년잠학작한인”이라는 시 구절은 작품 전체 내용을 요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낙선재본은 이러한 표제 없이 소설 본문만 깨끗하게 베껴 쓴 점으로 보아 후대에 베껴 쓴 이본[後寫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서울대학교본은 소설 후반부의 삽입시에 오자가 있어, 낙선재본의 필사에 직접적인 저본으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없다.

내용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 태조 때 검남주 사람 사옹은 기직의 집에 들어가 자신의 아들 사강백과 기직의 아들 기방의에게 글을 가르쳤다. 기방의의 누이인 옥호와 사강백 사이에 혼담이 있자, 기방의는 사강백을 시기하여 주9 고불의의 계략을 빌려 사옹 가족을 귀가하게 만든다.

사옹과 기직이 차례로 죽은 뒤, 고불의는 검남지부 마령의 아들 마우락에게 기옥호를 주11로 맞이하라고 부추기며 기방의를 꾄다. 옥호가 상중(喪中)이라는 이유로 혼담을 회피하자, 고불의는 그 속뜻을 알고 사강백의 초가에 불을 지른다.

고불의의 계략을 들은 옥호는 사강백 모자를 피신시킨다. 혼담을 늦추던 옥호가 상을 마친 후, 마우락이 주16를 갖추어 온다. 그러자 옥호는 고불의가 재물 때문에 혼인을 늦춘 것이라 하며, 마우락이 고불의를 처치하게 한다. 그리고 옥호 자신은 남장하여 도망한다.

한편, 사강백은 어머니 경씨와 함께 계수현 해영의 집에 몸을 의탁하여 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해영의 딸 빙심에 의해 사강백의 정체가 드러난다. 빙심은 사강백을 오빠 해진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 삼고, 사강백을 남경(南京)으로 보낸다. 이때 옥호는 자신의 이름을 기방의라 바꾸고 해영의 집으로 피신해 오는데, 빙심은 그가 옥호임을 밝혀내고 그를 보호한다.

한편, 사강백은 팽녀호에서 은둔 노인을 만나, 은둔 노인으로부터 속세를 피해서 숨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사강백은 그대로 남경으로 떠나고, 해진을 만나 재주와 식견을 인정받아 해진 대신 상소문을 짓는다. 황제는 사강백이 대신 지은 상소문에 적힌 내용을 받아들이고, 사강백을 주21 · 광서성참정에 임명한다. 사강백은 검남지부에서 주40을 받들어 모시고 종살이하는 기방의를 다시 찾아오고, 지부 마령에게 아들 마우락을 꾸짖게 한다.

해진은 아버지에게 사강백의 일을 알리고 빙심과 사강백의 혼담을 발전시킨다. 이때 사강백이 와서 어머니의 뜻을 따라 빙심을 아내로 맞는다. 사강백은 도찰원우부도어사를 제수받아 식구들을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그러나 주25가 황제로 오른 후, 사강백은 소(疏)주26을 올린 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광동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사강백은 집안 식구들을 거느리고 광동으로

영락제주28가 황제로 오른 후, 사강백은 자신을 문연각태학사로 부르는 조서(詔書)를 찢고 집안 식구들을 거느려서 팽녀호로 간다. 이후 해진은 팽녀호에서 사강백을 만나, 사강백으로부터 속세를 피해서 숨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러나 해진은 이를 따르지 않고 결국 감옥에 갇혀 감옥에서 죽는다. 사강백 부부는 지상선(地上仙)이 되어 자손이 끊이지 않았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명나라 태조 말에서 성종 즉위 초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재주가 뛰어난 사강백이 기옥호 · 해빙심 두 가인(佳人)과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강백이 해빙심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이유로, 사강백과 해빙심은 결혼하길 권유 받을 때 종과 주인의 관계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일단 결혼을 거부한다. 이 대목은 청나라 대의 재자가인(才子佳人)소설인 「성풍류(醒風流)」와 흡사하다.

낙선재본 한글 번역소설 「성풍류」는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는 재자가인소설의 한 계보가 조선 후기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한글본 「옥호빙심」도 그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인 정난지변을 주요한 사건으로 활용한다. 주인공 사강백은 귀양이 해제되어 돌아오는 길에 정난지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연왕(영락제)을 비판하며 주38에 대한 충의를 지키고자 죽을 결심을 한다. 사강백의 어머니 경 부인은 자신 때문에 아들이 절개를 지키지 못할까 봐 자결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정난지변을 활용해 충절과 효 사이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를 통해 더욱 복잡하면서도 현실감을 주는 방향으로 서사를 전개했다.

참고문헌

논문

김동욱, 「고전소설의 정난지변(靖難之變) 수용 양상과 그 의미」(『고소설연구』 41, 한국고소설학회, 2016)
장곤, 「<옥호빙심> 연구」(한국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1)
조광국, 「규장각본 <옥호빙심>의 서지 사항과 작품 세계」(『서지학보』 25, 한국서지학회, 2001)
조광국, 「고전소설에서의 사적 모델링, 서술의식 및 서사구조의 관련 양상 : 「옥호빙심」「쌍렬옥소삼봉」「성현공숙렬기」「쌍천기봉」을 중심으로」(『한국문화』 28,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01)
주석
주1

문학 작품 따위에서 기본적인 내용은 같으면서도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책. 우리말샘

주2

손으로 써서 만든 책. 우리말샘

주4

둘 이상의 단자음으로 이루어진 자음이라는 뜻으로, 격음과 겹받침을 아울러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5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동. 종로구의 남부에 위치해 있다. 종로에서 안국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각종 상업 시설이 발달하였다. 북서쪽에 조계사가 자리하며, 문화재로 ‘서울 우정총국(서울郵征總局)’이 있다. 우리말샘

주6

문서의 초고(草稿). 우리말샘

주7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 우리말샘

주9

세력 있는 집에 머물면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는 사람. 또는 덕을 볼까 하고 수시로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 우리말샘

주11

남의 후처를 높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6

혼인의 예절. 우리말샘

주17

중국 장쑤성(江蘇省) 서남쪽에 있는 도시. 양쯔강(揚子江) 하류 연안에 있는 수륙 교통의 요충지이며, 역대 왕조의 도읍지로 명승고적이 많다. 1928년에 국민당(國民黨) 정부의 수도가 된 후에 중국의 정치, 군사, 문화,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기계, 화학, 철강 공업이 발달하였다. 장쑤성의 성도(省都)이다. ⇒규범 표기는 ‘난징’이다. 우리말샘

주21

중국 명나라 때의 벼슬. 진사에 합격한 사람 가운데 문학이나 서예 방면에서 우수한 사람을 골라 임명하였다. 처음에 각 관서에 두었다가 후에 한림원에 예속되었다. 우리말샘

주23

추천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리던 일. 우리말샘

주25

중국 명나라의 제2대 황제(1383?~1402?). 본명은 주윤문. 연호는 건문. 재위 기간은 1398~1402년이다. 우리말샘

주26

그 시대에 중요하게 다룰 일에 대한 계책. 우리말샘

주28

중국 명나라의 제3대 황제(1360~1424). 묘호는 태종(太宗)ㆍ성조(成祖).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영락대전≫, ≪사서대전(四書大典)≫ 따위를 편찬하게 하여 학술을 장려했다. 재위 기간은 1402~1424년이다. 우리말샘

주29

임금의 명령을 일반에게 알릴 목적으로 적은 문서. 우리말샘

주31

인간 세상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신선. 우리말샘

주33

아름다운 사람. 주로 얼굴이나 몸매 따위가 아름다운 여자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36

재주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8

중국 명나라의 제2대 황제(1377?~1402?). 성은 주(朱). 이름은 윤문(允炆). 시호는 혜제(惠帝). 건문은 연호. 재위 기간은 1398~1402년이다. 우리말샘

주39

한글 옛 자모 ‘ㆍ’의 이름. 우리말샘

주40

조상의 무덤. 또는 그 근처의 땅.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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