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異本) 3종이 있는데, 모두 한글 필사본(筆寫本)이다. 서울대학교 소장본 4권 4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낙선재본 3권 3책, 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3권 3책이 있다. 이 중 낙선재본은 제2권이 빠져 있고, 중앙대 소장본은 제1권이 빠져 있어, 두 이본 모두 각각 2권 2책만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본의 4권 말에는 소설 본문 다음에 필사기 · 「한단몽기」와 함께, 역대 제왕을 송축하는 내용의 구가 붙어 있다. 필사기는 다음과 같다. 복자음(複子音)과 아래아는 현행 표기법을 따른다.
“내 삼십 년 젼의 안국방 집의 이실 때 셔암이 이 책 보는 거슬 듯고 마음의 죠히 넉여 한번 벗기고져 하다가 밋처 못하고…… 이 해 여름의 안해 드러갓더니 삼자부 윤소졔 이 책을 보거늘 신긔코 반가와 즉시 삼부의게 벗기기를 부탁하고 윤칠월의 패상의가 계츄슌젼 도라오니 다 벗겨시되…… 졔목을 친히 쓰고 또 이리 뎍어 긔록하노라. 갑신초동 십팔일 셕남거사는 견평방집 듕채 상실의셔 쓰다.”
견평방(堅平坊)은 조선 후기 중부 8방의 하나로, 1914년 동명(洞名) 개편 때 견지동(堅志洞)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따라서, 갑신년은 늦어도 1884년(고종 21)이 되며, 서암이 보았다는 저본(底本)은 늦어도 1854년(철종 5) 무렵에 유포되었던 것이 된다. 이 필사기를 통해 규방(閨房) 여성뿐만 아니라 사대부도 이 소설의 독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본 「옥호빙심」의 제1권에는 “반셰풍진행객도 백년잠학작한인(半世風塵行客途 百年潛壑作閑人)”라는 표제가 붙어 있다. 이 표제는 본래 소설의 한 장(章) 혹은 한 회(回)의 이름이거나 중편 · 단편집의 한 편명일 가능성도 있으나 개편시(開篇詩)일 가능성이 크다. 이 시는 권1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 게 아니라, 사강백의 일생을 응축해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사강백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므로, “반셰풍진행객도 백년잠학작한인”이라는 시 구절은 작품 전체 내용을 요약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낙선재본은 이러한 표제 없이 소설 본문만 깨끗하게 베껴 쓴 점으로 보아 후대에 베껴 쓴 이본[後寫本]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서울대학교본은 소설 후반부의 삽입시에 오자가 있어, 낙선재본의 필사에 직접적인 저본으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없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명 태조 때 검남주 사람 사옹은 기직의 집에 들어가 자신의 아들 사강백과 기직의 아들 기방의에게 글을 가르쳤다. 기방의의 누이인 옥호와 사강백 사이에 혼담이 있자, 기방의는 사강백을 시기하여 문객(門客) 고불의의 계략을 빌려 사옹 가족을 귀가하게 만든다.
사옹과 기직이 차례로 죽은 뒤, 고불의는 검남지부 마령의 아들 마우락에게 기옥호를 계실(繼室)로 맞이하라고 부추기며 기방의를 꾄다. 옥호가 상중(喪中)이라는 이유로 혼담을 회피하자, 고불의는 그 속뜻을 알고 사강백의 초가에 불을 지른다.
고불의의 계략을 들은 옥호는 사강백 모자를 피신시킨다. 혼담을 늦추던 옥호가 상을 마친 후, 마우락이 빙례(聘禮)를 갖추어 온다. 그러자 옥호는 고불의가 재물 때문에 혼인을 늦춘 것이라 하며, 마우락이 고불의를 처치하게 한다. 그리고 옥호 자신은 남장하여 도망한다.
한편, 사강백은 어머니 경씨와 함께 계수현 해영의 집에 몸을 의탁하여 종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해영의 딸 빙심에 의해 사강백의 정체가 드러난다. 빙심은 사강백을 오빠 해진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으로 삼고, 사강백을 남경(南京)으로 보낸다. 이때 옥호는 자신의 이름을 기방의라 바꾸고 해영의 집으로 피신해 오는데, 빙심은 그가 옥호임을 밝혀내고 그를 보호한다.
한편, 사강백은 팽녀호에서 은둔 노인을 만나, 은둔 노인으로부터 속세를 피해서 숨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하지만 사강백은 그대로 남경으로 떠나고, 해진을 만나 재주와 식견을 인정받아 해진 대신 상소문을 짓는다. 황제는 사강백이 대신 지은 상소문에 적힌 내용을 받아들이고, 사강백을 서길사(庶吉士) · 광서성참정에 임명한다. 사강백은 검남지부에서 선영을 받들어 모시고 종살이하는 기방의를 다시 찾아오고, 지부 마령에게 아들 마우락을 꾸짖게 한다.
해진은 아버지에게 사강백의 일을 알리고 빙심과 사강백의 혼담을 발전시킨다. 이때 사강백이 와서 어머니의 뜻을 따라 빙심을 아내로 맞는다. 사강백은 도찰원우부도어사를 제수받아 식구들을 거느리고 상경하였다. 그러나 혜제(惠帝)가 황제로 오른 후, 사강백은 소(疏)나 시무책(時務策)을 올린 일 때문에 어려움을 겪다가 광동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사강백은 집안 식구들을 거느리고 광동으로 떠난다.
영락제가 황제로 오른 후, 사강백은 자신을 문연각태학사로 부르는 조서(詔書)를 찢고 집안 식구들을 거느려서 팽녀호로 간다. 이후 해진은 팽녀호에서 사강백을 만나, 사강백으로부터 속세를 피해서 숨으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러나 해진은 이를 따르지 않고 결국 감옥에 갇혀 감옥에서 죽는다. 사강백 부부는 지상선(地上仙)이 되어 자손이 끊이지 않았다.
이 작품은 명나라 태조 말에서 성종 즉위 초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재주가 뛰어난 사강백이 기옥호 · 해빙심 두 가인(佳人)과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을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사강백이 해빙심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 있었다는 이유로, 사강백과 해빙심은 결혼하길 권유 받을 때 종과 주인의 관계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일단 결혼을 거부한다. 이 대목은 청나라 대의 재자가인(才子佳人)소설인 「성풍류(醒風流)」와 흡사하다.
낙선재본 한글 번역소설 「성풍류」는 의리와 명분을 강조하는 재자가인소설의 한 계보가 조선 후기에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한글본 「옥호빙심」도 그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인 정난지변을 주요한 사건으로 활용한다. 주인공 사강백은 귀양이 해제되어 돌아오는 길에 정난지변이 일어난 것을 알고, 연왕(영락제)을 비판하며 건문제에 대한 충의를 지키고자 죽을 결심을 한다. 사강백의 어머니 경 부인은 자신 때문에 아들이 절개를 지키지 못할까 봐 자결하려고 한다. 이 작품은 정난지변을 활용해 충절과 효 사이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으며, 이를 통해 더욱 복잡하면서도 현실감을 주는 방향으로 서사를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