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전리는 밀양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6km 지점이며, 하남읍 소재지인 낙동강유성의 수산에서는 동북으로 약 2km 지점이다.
이곳은 동서로 길게 계곡이 형성되어 잇고, 북으로는 해발 600m의 덕대산 기슭이 감싸고, 남으로는 낙동강이 서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지석묘는 덕대산 기슭의 남사면에 7∼10기씩 무리를 이루고 있다. 현재 확인된 것은 40여 기이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수십여 기가 더 있었으며 이들은 밭을 개간할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1979년 신고된 유물과 당시 알려진 바에 의하면, 남전리 지석묘의 구조는 상석 아래에 판석으로 축조된 석관과 석관 밖에는 천석으로 만든 석곽을 축조해 놓은 상태이다. 그리고 석관 내에는 석관과 연접해 동쪽에는 부실(副室)을 배치해 놓고 있다.
유물로는 석검은 석관 내부에, 붉은간토기는 별도의 방형 유구에 부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기타 이 곳에 현존하는 지석묘는 상석 하부에 지석을 가진 기반식 지석묘와 지석이 없는 개석식 지석묘가 혼재되어 있다. 간혹 상석에는 성혈이 새겨진 것도 있다.
출토유물은 석검 2점과 석촉 1점, 홍도 2점이다. 동아대학교박물관과 밀양시립박물관에 각각 1점씩 소장되어 있다.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의 석검은 길이 44.5cm의 회색 점판암으로 제작된 이단병식으로 검신은 병부에 비해 길고 넓으며 단면은 마름모꼴이다. 홍도는 기형이 큰 편으로 높이 17cm, 구경 12cm의 호형토기이다.
기벽은 얇고 표면의 단은 소성 후에 바른 것이며 횡마연수법(橫磨硏手法)으로 갈았다. 밀양시립박물관 소장의 석검과 홍도는 동아대학교박물관의 소장품과 유사하다. 석촉은 유엽형 유경촉으로 촉신 하부가 길어지면서 슴베가 발전되어 있어 슴베와 촉신 하부의 구분이 어렵다. 연대는 석검과 홍도의 특징으로 보아 기원전 5세기 전후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