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전 1세기 경에 조성된 돌널무덤으로, 1974년 12월 15일∼21일에 동아대학교박물관이 조사하였다.
석관묘는해발 27.4m인 섬의 정상부에서 동남쪽 경사면의 5부능선까지 수십기가 분포되어 있다. 다만 대부분이 노출되어 파손된 상태이다. 봉토의 유무는 알 수 없지만, 지하 60∼70㎝ 아래에서 유구(遺構)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 흙을 쌓은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는 파손된 무덤가운데 상태가 양호한 10기를 골라 시행하였다. 유구는 모두 널돌 여러 장을 이용해서 조립한 상자식 돌널로, 바닥돌[床石]이나 뚜껑돌[蓋石]이없는 것도 있다. 무덤의 장축은 지형을 따라 북북동에서 남남서 방향으로자리하였는데, 간혹 북동에서 남서로 향한 것도 있다.
제9호 돌널무덤은 출토된 철검(鐵劍)의 위치로 보아, 머리 방향이 북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길이 1.28∼1.95m, 너비 0.3∼0.7m, 깊이 0.2∼0.38m의 크기로, 단면은 장방형이다. 적갈색 민무늬토기 2점, 와질토기 1점, 철검 1점이 돌널 안에서 각각 출토되었고, 주위에서는 홈자귀[有溝石斧] 몇 점이 발견되었다. 민무늬토기는 아가리가 바라진 납작바닥의 단지이고, 와질토기는 아가리가 바라지고 둥근 바닥에 주판알 모양의 몸통을 가진 ‘주머니형 단지’이다. 철검은 길이 42.2㎝로 크기가 큰 편인데, 모습은 한국식 동검의 말기 형식과 비슷하다. 겉면에는 군데군데 목질(木質)의 흔적이 남아 있어, 나무로 만든 칼집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돌널무덤은 민무늬토기와 와질토기가 함께 출토되었고, 한국식 동검의 말기 형식을 반영한 철검이 보이므로, 대략 서기전 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천리 석관묘는 출토된 유물로 보아, 한반도 남부 지방에 분포한 돌널무덤의 편년을 가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초기철기시대의 진행 과정을 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