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공조낭관, 홍문관직제학, 소격서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미(士美)
  • 지지당(知止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령(宜寧)
  • 사망 연도1540년(중종 35)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소격서령
  • 출생 연도1459년(세조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권인혁 (제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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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공조낭관, 홍문관직제학, 소격서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미(士美), 호는 지지당(知止堂). 할아버지는 남규(南珪)이고, 아버지는 곡산군수 남치신(南致信)이며, 어머니는 하비(河備)의 딸이다. 영의정 남곤(南袞)의 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89년(성종 20)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02년(연산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08년 기사관(記事官)으로 있던 중 소세량(蘇世良)과 함께 사초의 내용을 발설하여 무오사화의 단초를 제공한 이극돈을 탄핵하였다. 같은 해 홍문관 수찬에 이어 사간원 정언이 되었고, 1509년에는 예조 좌랑을 지냈다. 1514년에는 뇌물받은 일로 대간이 탄핵하였느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514년에 연산군 때 진상한 유기(鍮器)를 남용한 죄로 탄핵을 받았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지만, 1515년에 같은 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1530년에 소격서 영을 지낼 때, 동료인 유종원이 쌀과 밀가루를 횡령하자, 그가 모를 일이 없다는 이유로 이후 수차례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37년 12월 학관(學官)으로 있던 중 송사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는 떨어진 옷을 입고 산천을 돌면서 스스로 창랑거사(滄浪居士) · 소요자(逍遙子)라고 불렀다.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네가 여덟번 벼슬을 제수받아 세번을 사양하고, 다섯번 나간 것은 부모가 있으므로 뜻을 굽힌 것이나, 집에는 선대의 토지와 집이 있어 살아가기 충분하니 내 죽은 뒤로는 벼슬에 나가지 말라. 그리고 묘비에는 단지 공조(工曹)의 옛 직함만 쓰고, 전한(典翰) · 직제학(直提學)은 취임하지 않았으니 쓰지 말라.”고 하였다.

뒤에 명종이 말하기를 “고(故) 직제학 남포는 물러나는 절개가 가상하고, 그 아들의 청백함은 옛사람이라도 넘지 못할 것이다.”하고 상을 내렸다. 권신 남곤의 형이었으나 권세에 물들지 않고 깨끗이 살아 당시 사람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았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쌍계유고(雙溪遺稿)』(한국문집총간)

주석

  • 주1

    : 자와 호 : 『쌍계유고(雙溪遺稿)』 卷之6, 墓碣銘, [직제학 남공묘갈명(直提學南公墓碣銘)]

  • 주2

    : 진사 급제 : 『쌍계유고(雙溪遺稿)』 卷之6, 墓碣銘, [직제학 남공묘갈명(直提學南公墓碣銘)]

  • 주3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五(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4

    : 이극돈 탄핵 : 『중종실록』 6권, 1508년(중종 3) 8월 8일. "안팽수 등이 남가의 개정이 미진함을 아뢰다"

  • 주5

    : 사간원 정언 임명 : 『중종실록』 7권, 1508년(중종 3) 12월 26일. "권복 · 남포 · 이희증 · 김영 · 성세창 · 이언호 · 김희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 주6

    : 수뢰 혐의로 탄핵 : 『중종실록』 21권, 1514년(중종 9) 11월 26일. "대간에서 오한상·심의·남포 등을 탄핵하다"

  • 주7

    : 유기 남용 혐의로 파직 : 『중종실록』 22권, 1515년(중종 10) 6월 18일. "헌부에서 남포·심의 등의 추단 계목을 가지고 아뢰다"

  • 주8

    : 파직 : 『중종실록』 86권, 1537년(중종 32) 12월 22일. "헌부가 황침·이형순·전거원·남포·선헌·심봉원의 일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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