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이 거둥할 때 또는 정전에 출좌할 때 시위한 행렬의 일원으로, 현재의 군악대원에 해당한다.
원래는 서울의 선전관청에 속한 취고수(吹鼓手)만을 뜻하였으나, 뒤에는 다른 지방에서 선발되어 각 군문(軍門)에 대령하고 있던 취고수도 내취라 하였다.
중앙의 악사들은 황천익(黃天翼)에 초립을 썼으며, 지방의 악사들은 흑천익(黑天翼)에 초립을 썼다. 정조 때부터 원래 선전관청에 속했던 내취, 즉 황내취(黃內吹)를 원내취(元內吹)라 하고, 다른 지방에서 선발되어온 흑내취는 겸내취(兼內吹)로 그 명칭을 바꾸고, 의관을 황내취의 것으로 통일하게 하였다.
악기의 편성과 임금의 거둥에 참가했다는 사실로 보아 취고수와 관계있는 것으로 보인다. 악기편성은 징·태평소·나각·나발·북 등으로 오늘날의 대취타(大吹打)의 편성과 거의 같다.
국왕의 행차 때 사용된 이외에도 궁중에서 선유락정재(船遊樂呈才)의 반주를 맡은 기록이 있으며, 이때의 악기편성은 징[鉦]·나(螺)·호적·자바라·고(鼓)·나각·나발 등 7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