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내취는 조선 후기 선전관청에 속하여 입직, 시위, 연주를 담당한 군영악대이다. 임진왜란을 계기로 바뀐 군제에 따라 조선 전기의 내취라치와 취각의 제도를 계승하여 성립된 군영악대이다. 내취는 출신 지역에 따라 황내취와 흑내취로 구분되고, 소속 기관에 따라 원내취와 겸내취로 구분되며, 악기 편성에 따라 취타내취와 세악내취로 구분되었다. 내취는 입직, 시위, 연주를 담당했다. 취타내취는 내취군악대로도 활동했고, 구군악대로도 불렸다. 1895년 선전관청 폐지 후 시종원에 속했으며, 1908년 궁내부 장악부로 이속되었다.
정의
조선 후기, 선전관청에 속하여 입직, 시위, 연주를 담당한 군영악대.
개설
구분
변천
한편 1895년 선전관청이 철폐된 후 내취는 시종원(侍從院)에 이속되었고, 1900년에 우시어청(右侍御廳)이 설치되자 다시 우시어청으로 이속되었다. 1907년에 우시어청이 폐지되었고, 1908년 내취는 궁내부 장악부(掌樂部)로 이속되었다. 내취가 궁내부 장악부로 이속되면서 군영악대로서의 기능이 없어졌다. 1913년부터 아악대(雅樂隊)에 세악내취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고, 1915년부터 취타내취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다.
악기 구성 및 복식
세악내취는 피리2, 대금1, 해금1, 장구1, 북1로 구성된 삼현육각(三絃六角)이었다. 내취의 복식은 호수(虎鬚) 혹은 작우(雀羽)를 꽂은 초립, 황철릭, 남전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취의 역할은 입직과 동가(動駕)와 전좌(殿座)에서의 시위, 그리고 군영의 호궤(犒饋), 사악(賜樂), 궁중의 연향에서의 연주 등이다. 취타내취가 전승한 음악은 「대취타」이고, 세악내취가 전승한 음악은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숙희, 『조선후기 군영악대: 취고수, 세악수, 내취』(태학사, 2007)
논문
- 이숙희, 「조선조 행악연주복식과 대취타 연주복식의 관계」(『대취타 복식 고증 토론회 결과』, 국립국악원, 202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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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세악의 풍류를 하던 군악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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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융복을 입을 때 쓰는 붉은 갓의 네 귀에 꾸밈새로 꽂던 흰 새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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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무관의 구군복에 갖추어 쓰던 전립(戰笠)을 장식하던 새의 깃. 공작의 꽁지깃과 남빛의 새털을 한데 묶어 펼쳐서 손바닥같이 둥글넓적하고 아주 두툼하게 만들었으며, 방색(方色)을 따라 남색·누런색·붉은색·흰색·검은색의 새털을 쓰기도 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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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임금이 탄 수레가 대궐 밖으로 나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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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 등이 정사를 보거나 조하를 받으려고 정전(正殿)이나 편전(便殿)에 나와 앉던 일. 또는 그 자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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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군사들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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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임금이 신하에게 풍류를 내려 주던 일. 또는 그 풍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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