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路鼗)와 함께 인귀(人鬼)의 제사, 즉 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공자묘(孔子廟)의 제사 등에서 댓돌 아래 마당에 설치하는 헌가(軒架)에 편성되었으나, 선농·선잠·우사의 제사가 없어진 지금은 문묘제향(文廟祭享)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노도와 함께 음악의 시작과 종지 및 음악 중간중간에 간간이 친다. 『세종실록』권128 오례의(五禮儀) 악기도설(樂器圖說)에 나와 있는 노고는 둥그런 틀에 조그마한 북 두개를 좌우에 수평으로 매달았으나, 현재 국립국악원에 보존되어 있는 노고는 북통이 비교적 긴 큰북 두개를 서로 엇갈리게 나무자루에 꿰어 단 것으로 『악학궤범』의 제도를 본받아 1930년경에 새로 제작된 것이다.
북통은 붉은 칠을 하였으며 나무틀의 윗부분(龍竿) 양끝에는 용의 머리를 새기고, 그 입에 색실로 된 유소(流蘇)를 늘어뜨렸다. 나무틀의 두 기둥은 십자(十字)로 엇갈려놓은 나무호랑이에 꽂아 고정시켰다.
노고나 뇌고(雷鼓)의 북채는 『악학궤범』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진고(晉鼓)의 북채를 본떠 나무로 만들었다. 국립국악원에 소장되어 있는 노고의 크기는 틀의 높이 196.5㎝, 틀의 윗부분 용간의 길이 140㎝, 북면의 지름 40㎝, 북통의 길이 96㎝, 나무호랑이의 길이 54㎝, 나무호랑이의 높이 19㎝이다.
노고는 노도·영고(靈鼓)·영도(靈鼗)·뇌고·뇌도(雷鼗)와 함께『고려사』악지(樂志)에 없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