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원형의 작은북 하나를 긴 나무자루에 꿰뚫어 단 것으로, 나무로 된 북통에 고리를 두개 박고 그 고리에 가죽끈을 달았다.
이 나무자루를 땅에 세우고 왼쪽 오른쪽으로 나무자루 자체를 돌리면 북통 고리에 달린 가죽끈이 북면을 때려 소리가 난다.
작은북이 두개 달린 것을 노도(路鼗), 세 개 달린 것을 뇌도(雷鼗), 네 개 달린 것을 영도(靈鼗)라고 하며, 각각 노고(路鼓)·뇌고(雷鼓)·영고(靈鼓)와 짝을 이룬다.
『고려사』악지에 의하면 무무의 2인이 도를 들었지만 헌가(軒架)에서는 사용되지 않았고, 『세종실록』권132 가례(嘉禮) 악기도에 보이지만, 세종조의 회례연(會禮宴) 헌가에는 보이지 않으며, 『악학궤범』 권6 도조에 “북통이 하나인 도는 지금은 쓰지 않는다.”라고 명시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태종 때 가례에 쓰였고 세종 때 벌써 쓰이지 않은 것 같다.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하는 도는 『악학궤범』의 제도를 본받아 1930년 경에 새로 제작한 것이다. 도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노도나 영도처럼 받침대에 꽂아둔다. 받침대는 나무로 호랑이 두 마리를 엇갈리게 만들어 十자형태로 제작한다.
도의 자루 맨 위에는 기러기모양의 흰 새를 나무로 깎아 꽂았고, 그 밑에는 연꽃을 상징하는 장식을 깎아 꽂았다. 크기는 길이 189㎝, 북면의 지름 14.3㎝, 가죽끈의 길이 22㎝, 새의 길이 23㎝, 새의 너비 22㎝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