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공조좌랑, 경상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18년(중종 13) 경상도관찰사 김안국(金安國)은 우의가 돈독하고 불순함이 없으며 고인(古人)의 법에 따라 행동, 유림들의 추앙을 받음 등을 들어 천거하여 6품직에 특채되었다.
그리하여 내섬시주부 · 장흥고령(長興庫令) · 지평을 거쳐, 1519년 공조좌랑을 역임한 뒤, 경상도도사로 재직 중 기묘사화 때 김안국의 일파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 고향인 고성에 내려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538년(중종 33)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가 풀림)되어 직첩을 환급받았다. 초계(草溪)의 송원서원(松原書院), 고성의 갈천서원(葛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해동잡록(海東雜錄)』
- 『광주노씨세보(光州盧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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