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이웃 마을인 병산리에 전해오는 탈.
내용
우리나라의 탈은 대륙 전래의 기악면(伎樂面)·무악면(舞樂面)·행도면(行道面)·불면(佛面) 등의 도법(刀法)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을 것이나, 현존하는 옛 가면 중에서 마을굿에 쓰이던 신성가면의 성격을 지니면서 예능가면으로도 쓰인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 하회탈과 병산탈이다.
하회탈은 이른바 심목고비(深目高鼻: 코가 크고 쑥 팬 눈두덩이)의 기악면적 골격과 사실주의적 수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악면이 가지는 양식화된 표현과 좌우불상칭의 수법 및 중간 표정들을 보인다.
각시·중·양반·이매·부네탈 들은 실눈으로 반개(半開)이며, 중·양반·이매·선비·백정탈 들은 턱을 따로 달아 움직일 수 있어 표정의 변화가 가능하고, 얼굴을 숙이면 어둡고 뒤로 젖히면 밝은 표정의 효과를 더하는 중간표정을 볼 수 있다.
각시·부네·할미탈 들은 턱이 움직이지 않고 좌우상칭이나, 양반과 선비의 머슴역인 초랭이와 이매탈은 좌우불상칭의 수법을 써서 좌우 안면근육의 방향, 구각(口角)의 좌우의 높이, 좌우비익(左右鼻翼)의 각도, 주름살의 방향들이 달라 움직임에 따라서 그 표정이 변화하고 살아 움직이며 희극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다.
고정된 표정을 가진 탈로 하여금 이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을 가지게 했다는 것은 선인들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발명의 결과가 아닐 수 없으며, 기악면에서 무악면으로 옮겨간 흐름과 또 일본의 노가쿠[能樂: 일본 고유의 가면음악극] 중의 가면인 노멘[能面]으로 옮겨간 중간적 위치를 보여준다.
하회탈 중 초랭이와 병산탈 2개는 무악면적인 수법을 보여주는 예로, 사실적인 수법의 다른 가면들에 비하여 대담한 감도법(減刀法)을 써서 더욱 도식화되고 양식화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하회탈의 9개의 인면(人面) 중 5개와 병산탈은 이른바 ‘절악(切顎)’으로 턱을 따로 달아 움직이게 되어 있고, 한편 완전히 한국화된 얼굴로 각시·부네·이매 등이 있다.
우리나라 탈들의 재료는 대개가 종이나 바가지인 데 비하여 하회탈과 병산탈은 드물게 나무탈이며, 용재는 오리나무로 조각하고, 그 위에 옻칠을 두 겹 세 겹으로 올려 정교한 색을 내고 있다.
이 탈들의 제작자와 제작 연대는 미상이다. 마을에는 허도령이 제작하였다는 전설과 하회마을의 입주자에 대해서,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유씨 배반(柳氏杯盤)”이라는 말이 전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대체로 고려 중기까지는 허씨, 그 뒤에 안씨가 입향하였고, 나중에 유씨는 조선 초기부터 정주하였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하회탈의 제작 연대를 고려 중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일본에서 대륙 전래적인 노가쿠[能樂]가 완성된 때는 14세기 중엽으로 우리나라 고려 말 공민왕 때에 해당된다. 이러한 점과 하회리에 전하는 허도령 전설 등을 감안할 때, 하회탈과 병산탈의 제작연대를 고려 말기 이전, 대체로 고려 중기(11∼12세기)로 추정해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는 또 고려청자의 전성기로 고려인들의 미의식이 극도로 발달하였으며, 고려인들의 예술가로서의 잠재적 능력을 과시한 때이기도 하다.
의의와 평가
현황
참고문헌
- 『한국가면극』(이두현, 문화재관리국, 1969)
- 『한국미술사』(김원룡, 범문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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