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헌으로는 괴뢰를 ≪훈몽자회≫(1527)에서 “傀 광대괴”·“儡 광대뢰”라고 새겼고, ≪역어유해 譯語類解≫(1690)에서는 “광대”·“곡도” 등으로 새겼으며, ≪역어유해≫ 이후에 엮어진 ≪만물초 萬物草≫에서는 “광ᄃᆡ노름”·“곡도각시” 등으로 새기고 있어, 현존하는 <꼭두각시놀음>과 같은 목우희(木偶戱)를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보면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의 문헌들에서는 광대, 즉 가면놀이와 곡도, 즉 목우희를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시 20세기 초 최남선의 ≪신자전 新字典≫ (1915)에서는 괴뢰를 “망셕쥬ᇰ탈”로 새기고 있어 그때까지 전승되던 <만석중놀이>를 가리키고 있다.
중국의 ≪문헌통고 文獻通考≫에 당장(唐將) 이적(李勣)이 고구려를 파하고 괴뢰와 월조이빈곡(越調夷賓曲)을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구당서 舊唐書≫ 음악지에는 고구려에도 역시 괴뢰희가 있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보면 우리 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고유의 원시 인형놀이가 있었고, 그 목우희가 서역 문물의 북방 통로인 북제(北齊)를 거쳐 고구려악의 하나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인형놀이가 연면히 전승되어, 지금은 없어진 <만석중놀이>와 현존하는 민속극인 <꼭두각시놀음>에까지 이어 온다.